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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지
보물 제72호와 73호로 지정되어 있는 단속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탑 두개 만으로도 절의 규모가 엄청났음을 짐작할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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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절이라기 보다는 어느 양반집 후원 같은 정갈하고 그윽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입니다. 문화재로는 석조비로좌나불상(보물 제1021호), 내원사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75호), 석조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76호)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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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해인사에 뿌리를 두고있는 사찰이며 보기 드문 우리나라의 대표 비구니 참선도량입니다.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인 대원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을 간직하고, 바위틈을 흐르는 청정한 물소리와 더불어 비구니들의 맑은 미소를 벗하는 곳입니다. 절안에는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제1112호),대원사 구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30호) 등의 문화재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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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대종사생가, 겁외사
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인 성철대종사를 기리기 위해 생가에 기념관과 사찰인 겁외사를 건립했습니다. 성철스님이 보이셨던 고된 수행의 모습과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무소유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 중산리계곡 중산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리산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계곡은 지리산 등반의 출발점으로도 유명한 아름다운 계곡입니다.
빨치산토벌전시관 6.25동란에 암약했던 빨치산조직에 대한 전시관으로 국가 안보를 고취하고 지리산과 빨치산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한 산 교육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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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면시배유지 (사적 제108호)
문익점이 원나라 사신으로 가서 몰래 목화씨를 붓 통에 숨겨 들여와 처음으로 재배한 곳입니다. 목면시배유지에는 지금도 그 조상의 얼을 되새기기 위해 면화를 심어 가꾸고 있으며 목면시배유지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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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형왕릉 (사적 제214호)
가야의 마지막 왕인 제 10대 임금이자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이며 특이하게도 피라미드식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습니다. 구형왕과 왕비의 유물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1793년에 덕양전을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봄과 가을에는 추모제를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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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유적
조선 중기의 유명한 학자 남명 조식의 유적으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평생을 바친 곳입니다. 개황(사적 제305호),산천재(사적 제305호), 별묘, 신도비, 덕천서원 등의 유적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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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한방약초축제
예로부터 약초의 고장이자 허준의 스승 류의태가 있는 고장인 산청은 해마다 봄이 되면 지리산의 약초들을 선보이는 축제가 열립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이 축제는 약초박람회와 사랑의 혜민서라는 행사를 통해 무료 한의진료봉사도 합니다. 직접 약초의 효능을 체험하거나 퀴즈를 알아보는 행사도 마련되어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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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태 약수터
서출동류수라 하여 사쪽에서 솟아 동쪽으로 흐르는 샘물로 아침이면 떠오르는 햇살의 정기를 샘 안 가득 받아낸다고 합니다. 위장병과 피부병 등의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
남사 예담촌에 가장 먼저 정착한 성씨는 고려말 진양 하씨부터 였으나 자세한 사항을 알기 어렵고 성주 이씨는 하씨가 정착한지 약 100년 후 단종복위모의사건(1456년)으로 성삼문의 이모부인 이숙순이 낙남(落南)하여 정착하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밀양박씨는 병자호란 당시 외가에 피난하여 온 박승희, 승필 등이 정착하여 계속 살아왔다고 합니다. 이곳의 주된 성씨는 성주 李씨(약 450년), 밀양 朴씨(약 350년), 진양 河씨(약 700년), 전주 崔씨(약 100 년), 연일 鄭씨(약 80 년), 재령 李씨등 육성(六性)이지만, 현재는 30여에 가까운 다성(多性)마을로 90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 속의 남사마을 인물들을 나열해보자면 고려시대에 윤(尹) 왕후(王后)가 태어났으며, 정당문학 강회백(姜淮百) 이 생장하였고 조선 세종때 영의정 하연(河演)도 이 마을의 출신이며 그밖에 대소과 문무백관이 속출하였으며 특히 구한말에 면우(?宇) 곽종석(郭鐘錫)선생이 태어나 한국 유림 독립운동인 파리장서(巴里長書)를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여 조국 광복의 불씨를 지핀 것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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