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자연
덕유산 눈꽃, 디카 산행
우똘이
2006. 1. 2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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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방에 두 번째 폭설이 내린 지난해 말, 덕유산을 찾았다. “보름 동안 눈을 뿌렸다”는 향적봉대피소 박봉진 구조대장의 말을 입증하듯, 무주 IC를 빠져나오자마자 새하얗게 머리를 인 덕유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20분을 타고 올라가는 곤돌라, 발아래로 영호남에서 몰려온 스키어가 바람을 가르며 눈을 지친다. 곤돌라가 해발 1,000m 이상 올라가자 소나무 가지에 걸린 눈 무더기가 성성하다. 설천봉 정상에서 곤돌라가 느긋하게 유턴을 마치자마자 사진기자가 카메라 가방을 연다. 그러나 사흘 중 이틀은 그렇듯 설천봉 정상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그렇다고 다시 카메라를 집어넣을 필요는 없다. 설천봉에 자리한 마천루 카페를 지나 등산로에 진입하기만 하면 성가신 안개는 금방 걷힐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가자 파란 하늘 아래 향적봉 정상이 훤칠하다. 향적봉 서쪽 사면에는 눈꽃이 아직 남아 있다. 박봉진 대장은 “올해는 눈꽃이 15cm 정도까지 붙었다”며, “근래 들어 최고”였다고 말한다. 눈이 그친 지 일주일이 지나서인지 그만 한 눈꽃은 남아 있지 않고, 잔가지에 들러붙은 3~4cm의 눈꽃만 듬성듬성 보인다. 상고대도 보이지 않는다. 상고대는 습한 구름이 산 능선을 타고 넘으면서 구름 속에 있던 습기가 눈처럼 내려 나뭇가지나 풀에 달라붙는 것. 하얀 서릿발이 나뭇가지 뒤편으로 길게 뻗치는 것을 ‘상고대가 붙는다’고 말한다. 향적봉 서북 능선은 상고대를 찍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첫서리가 내리는 10월 중순 이후부터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덕유산에서 10년 이상 산 사진을 촬영해온 서현 씨(47)는 “향적봉 상고대는 낮에도 생기기 때문에 뜬금없이 만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영하의 기온과 짙은 안개, 적당한 바람이 상고대를 만드는 조물주. 그리고 ‘기다림’은 필수다. 일몰과 별밤은 향적봉에서 한 가지 더, ‘대피소의 밤’은 산 아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낭만을 선사한다. 바로 대피소 지붕 위로 보이는 별. 씻지 못해 끈적거리는 얼굴의 땟국과 고린내 나는 발 냄새를 묵묵히 견뎌야 하는 고역을 한 방에 날려버릴 청량제가 된다. 별에는 문외한이더라도 머리 위로 막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빛, 카시오페이아와 북두칠성의 찬란한 조화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묵직한 트라이포드와 B셔터 기능만 숙지하면 떨어지는 별의 꽁무니까지 촬영할 수 있다. 대피소의 밤은 고요하지만은 않다. 한 명쯤은 있게 마련인 ‘코 고는 손님’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고단하기까지 하다. 숙소 안은 건조하기 때문에 머리맡에 물수건이나 물병을 놓고 자는 게 좋다. 겨울철, 산 정상은 오전 6시 30분경부터 여명이 진행된다. 사막에서 진행되는 일출처럼 동녘 사위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이는 여명. 금방이라도 불쑥 해가 떠오를 것 같지만, 이런 색조가 한 시간은 유지되니 너무 급하게 마음먹을 것은 없다. 덕유산 일출 촬영 명소는 향적봉에서 남동쪽 능선을 따라 1km 떨어진 중봉. 대피소에서 15분 걸음이다. 겨울에는 일출 지점이 동쪽으로 이동하는데, 중봉에 서면 겹겹이 둘러선 산자락 너머로 해가 올라온다. 향적봉은 중간에 평야가 끼어든다. 요술 부리는 중봉의 일출 중봉은 바람받이다. 반드시 방한복과 마스크, 두꺼운 양말을 챙겨야 한다. 사진을 찍으려면 묵직한 트라이포드와 표면이 껄끄러운 장갑이 필수다. 맨손으로 셔터를 조작할 생각을 하다간 동상에 걸리기 십상. 몸이 따뜻해야 사진 촬영에 열의를 다할 수 있다. 오도산(1,067m, 경남 거창군) 정상, 쪼뼛한 봉우리 위로 해가 떠올랐다. 그러나 밤새 구름이 넘나들던 덕유능선은 이날 아침에도 조화를 부렸다.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얇은 층의 구름이 어지러이 중봉을 뒤덮었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계속,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구름이다. 덕분에 카메라와 떠오르는 태양 사이는 무지갯빛 속에 갇혔다. 해가 막 뜨려는 즈음 보랏빛을 발하더니, 일출 직전에는 핑크빛 햇무리가 생겨났고, 일출 후에는 백열등 불빛, 30분이 지나자 형광빛을 발했다. 두께를 알 수 없는 구름이 오히려 다양한 오브제를 제공해 준다. 중봉 정상에 서서 오른편, 그러니까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장쾌한 덕유능선이 시작된다. 향적봉에서 시작해 동엽령, 무룡산, 삿갓재, 남덕유까지 20km에 이르는 덕유능선. 중봉(1,594m)에서 남덕유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인데, 장엄한 덕유능선을 앵글에 담을 수 있는 천혜의 촬영 포인트다. 무룡산에서 남으로 꺾인 능선은 남덕유산을 향하고, 그 너머에는 반야봉과 천왕봉까지 지리산 능선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쇠갈비처럼 겹겹이 두른 산자락을 담을 수 있는 지점이다. 촬영과 함께 덕유능선을 좀더 감상하고 싶다면, 중봉에서 남으로 뻗은 능선을 타고 가면 된다. 힘들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라 겨울 산행 초보자라도 스패치와 아이젠만 착용하면 무난하게 갈 수 있다. 그러나 능선에 이는 바람은 칼날처럼 파고들기 때문에 기능성 방한복이 필수다. 평소에 입던 패딩 점퍼 같은 옷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일출 촬영을 마친 뒤 향적봉대피소에서 아침을 지어 먹고 능선을 타고 가면 하루 산행으로 동엽령(4.3km)까지 간 뒤 칠선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향적봉에서 칠선매표소까지는 8.5km. 4~5시간쯤 걸린다. 체력이 된다면 능선을 타고 무룡산과 삿갓재대피소까지 간 뒤 안성매표소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산행 거리는 약 15km로, 7~8시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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