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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스포츠

성곽 아래 보이는 작고 작은 저 세상

성곽 아래 보이는 작고 작은 저 세상

5천원으로 만난 특별한 서울 ⑤ 서울성곽 2

성곽 가는 길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만나다

"콜록콜록!" 목에서 나오는 둔탁한 기침 소리가 아침을 알린다. 침대에서 내려오는 10초는 10분처럼 더디고 힘들다. 지난 주말부터 앓은 감기 탓이다. “오늘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9도로 예상됩니다.” TV를 켜자마자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옷장에서 내복을 꺼냈다. 이번 겨울 들어 처음이다. 목도리와 마스크, 털모자와 장갑까지 착용하니 남극으로 향하는 탐험대의 모습과 닮았다. 입춘 직전에 만난 독한 감기의 여파가 꽤나 오래 간다.

지하철에 오른 나는 먼저 종로구청으로 향했다. 서울성곽 종주 지도를 얻기 위해서다. 지난 번 서울 성곽 종주 때 길을 잃었던 착오를 사전에 없애기 위한 일종의 방지책이다. “서울성곽 종주지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종로구청 안내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서울성곽 종주하시려나 봐요. 날도 추운데 조심하시구요.” 목도리에 마스크, 털모자를 푹 눌러쓴 내 모습이 걱정된 모양이다. 지도를 펼쳐보니 서울성곽 종주를 위한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코스는 동대문에서 성북동, 북악산 숙정문, 인왕산을 지나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길. 동대문에 발을 내려놓으니 성곽에 둘러쌓인 교회가 눈에 띈다. 성곽이 길게 뻗어있는 그 길 이름은 ‘창신성곽길’이다. 창신성곽길은 왼쪽으로 성벽이, 오른쪽으로는 가게와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5분 정도 성벽을 따라 걷자 왼쪽으로 서울(낙산)성곽길이 나타났다. 그 옆에는 한 동호회에서 만들어놓은 서울성곽 종주코스 이정표가 붙어 있다. 그 길 위에 발걸음을 두니, 아침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은 물론 등산복 차림의 어르신, 무거운 어깨로 집으로 향하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길게 늘어선 성곽을 바라보니, 그것을 쌓아올려야 했던 이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서울성곽은 전쟁과 침략으로 수천년 동안 고생했던 치열했던 삶의 현장 그 자체였다.

성곽을 따라 올라가니 도심 위의 꼭대기 낙산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전망은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했고, 맑은 공기는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서울에서는 느끼기 힘든 자연의 신선함을 만끽하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성공의 대한민국

낙산 공원에서 내려오면 대학로를 만날 수 있다. 말 그대로 대학로는 대학시절의 추억이 깃들어져 있는 곳이다. 친구들과의 대포 한 잔의 추억이 있었고, 기타 한 대로 하나가 되는 길거리 공연이 있었다.

"축 합격, oo외고, ㄱㄱ과학고, ㄴㄴ외고." 대학시절의 추억을 더듬다보니, 한 중학교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외국어고나 과학고 진학을 축하한다는 것이 플래카드의 주요 내용이다. 시쳇말로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다. 1등만을 기억하기보다는 각각의 고민을 갖고서도 3년 동안 최선을 다한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는 것일까? 그 까닭은 아마도 출세에 각자 삶의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거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공을 위해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중고등학생들은 성공을 위해 매달 수십만원을 들여 고액과외를 받고, 일부 대학생들은 출세를 위해서 타인을 위한 돕기에 나선다. 직장인들은 진급을 위해 고집불통 상사의 몸종을 자처해야만 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도 그러하고, 지금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조카도 그렇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학교에 내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있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가난과 부유가 공존하는 성북동, 성공을 말하다

대학로에서 한성대입구를 지나 성북동 방향으로 이동했다. 30분 정도 그 길을 따라 걷다가 성북초교 뒤쪽에 길게 펼쳐진 성곽 길을 만났다. 위로 솟아 있는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성북동의 가옥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자동네로 유명한 성북동에도 판자촌은 존재했다. 성북동의 구석진 한 켠에는 조만간 쓰러질 듯한 아슬아슬한 집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반대편에는 판자집 50여 채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남향 가옥들이 모여 있었다.

몇 컷의 사진을 찍다보니 한 무리의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그 중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로 말했다. “부자 동네인 성북동에도 이런 판자집이 있네요잉?” “긍게, 그러네요잉, 서울에 아직도 이런 집이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 당게요. 저쪽에 있는 대궐같은 집 좀 보쇼잉. 저런 데서 살면 살맛은 날 텐데요잉.” 가난과 부유가 공존하는 성북동은 오늘날 우리가 왜 1등에 집착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당신의 서울, 안녕하십니까?

비용

교통비

1,800원

김밥2줄

2,000원

캔커피

500원

생수

700원

5,000원

북악산 숙정문을 따라 숭례문을 향해 걷다 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감춰져온 북악산을 볼 수 있다. 사람의 발길을 반세기동안 허락하지 않은 북악산 길은 말 그대로 날것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선조들은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18.2㎞의 거대한 서울성곽을 쌓아 올렸다. 걸어가면 대략 하루가 꼬박 걸리는 긴 돌담길이지만 현재 남아 있는 길은 10.5㎞뿐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재창조의 욕심 탓이다. 이런 욕심으로 동대문과 청량리, 용산과 종로, 서대문과 혜화동 사이에 있던 성곽에는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있다. 서울성곽의 빠진 이를 메꿔 넣는 일은 당연한 책무일 것이며, 더 이상의 훼손은 적어도 막아야 한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성곽 보존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서울의 문화 유산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서울성곽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의지가 중요하며, 다음과 같은 고민은 필수다. 당신의 서울, 안녕한가? 서울의 안녕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