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소재 북악산 산책로가 42년만에 완전 개방되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긴 세월동안 잘 보존되어 있을 북악 생태를 가슴 속에 그리며, 산을 오르기에 앞서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북악산 주변 정보를 수집하고, 산책 코스도 미리 입수했다. 북악하늘길은 ㆍ2ㆍ3 산책로와 스카이웨이(Skyway)로 이루어져 있었다. 네 코스를 모두 합하면 7㎞ 조금 넘지만, 1ㆍ2ㆍ3 산책로만 이용할 경우 4㎞ 조금 못되는 거리다. 산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1-2-3산책로-스카이웨이’의 순과 역순으로 ‘스카이웨이-3-2-1산책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아래에서 위로 거슬러오르며 산책하는 통상적인 방법이고, 후자는 산등성이에서 산 아래로 산책하는 방법이다. 거리는 똑같지만 산책 난이도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즉 에너지 소모량 차이가 크다. 기자는 조금 꾀를 부려 산책 코스로 후자를 택했다. 힘을 덜 들이기 위해서였다.
먼저 북악 스카이웨이로 가려면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하차하여 6번 출구를 나와 01번 마을버스를 탑승하면 된다. 마을버스를 탑승하면 곧바로 오르막길을 치달으며 인근 아파트 안으로 들어선다. 버스 안내방송으로 전체 아파트 동의 절반 정도 소개가 끝나고 그들 동을 돌다 10분쯤 지나면 성북구민회관 정류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5~6분을 오르면 스카이웨이 시작점 ‘하늘한마당’이 나온다. 넓은 터에 각종 헬스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현대식 화장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산책 전에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볼일을 보라는 뜻이다. 마침 산책을 마치고 하산하던 60대 노인 한분을 만났다. “산책 코스를 잘 정했구먼. 난 1산책로부터 시작해 산을 오르느라 고생 깨나 했어. 이곳에서 시작하면 거진 내리막길이라 훨씬 수월할거야. 경치가 참 좋아. 다른 산과는 또 다른 면이 있거든. 그걸 발견하며 잘 갔다오게나.” 말씀을 끝내자 수건을 꺼내 이마 땀을 닦으시고는 벤치에 덥썩 주저 앉으셨다. 황사 때문에 그리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아이에서부터 지팡이를 짚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았다. 스카이웨이 코스는 한참 동안 산속 길 차도와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좌우 확 트인 공간으로, 도심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심심치가 않다. 산책로 양옆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울창한 참나무와 아카시아 나무들이 무성한데, 꽃철 잎철이 되면 정말 볼 만할 것 같았다. 주변 개나리, 진달래 나무에는 곧 꽃잎을 터뜨릴 봉오리가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등에는 땀이 솟는데, 산기슭 응달 낙옆 위에 소복히 내려앉은 흰눈은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햇볕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다모정을 거쳐 하늘전망대로 스카이웨이 코스를 반시간 정도 거닐 때쯤 다모정이란 작은 정자가 나왔다. 일찍부터 산책 온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벤치에서 쉬거나 운동을 하고 있었다. 여의도에서 부모와 함께 산책 온 5학년생 김희준 어린이는 “처음 산책을 시작할 때는 조금 겁을 먹었는데 코스가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산책로마다 전망대와 쉼터가 있어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도록 해놓아 좋아요. 공기도 맑구요.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와야겠어요”라며 북악산책로를 소개했다. 다모정에서 조금 가면 멋진 아치형 나무 다리가 나오는데, 10m는 더 되어 보이는 높이의‘숲속다리’. 이곳이 3산책로 진입 시점이다. 3산책로는 원래 군 순찰로로, 올 2월 27일에 시민들에게 개방된 곳이다. 그래서인지 산책로를 지나다보면 군 초소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산책로 중 가장 짧은 코스지만, 2산책로까지 가자면 작은 능을 서너번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게다가 스카이웨이가 주로 흙길인 데 반해 이곳은 시멘트 계단이 많아 조금은 힘든 코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단지 요철이 있을 뿐이다. 산책로 중간중간에 우수 전망 명소도 설치되어 있고, 우측으로 내부순환도로를 씽씽 달리는 차들과 시내도 볼 수 있다. 3산책로 거의 끝점 동마루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지난해 9월에 개방된 2산책로가 반가이 맞아준다. 3산책로 쪽 2산책로 시작점에는 다리 하나가 건설 중이었는데 이름하여 ‘하늘교’. 두 산책로를 이어주기도 하지만, 그간 단절됐던 북악산과 북한산을 연결해주는 큰 의미도 있다. 교각 공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데 화강석을 깎아 난간을 만드느라 인부들의 얼굴과 머리에는 돌가루가 날려 하얗게 변해 있었다. 특히 이곳 다리는 두 산의 정기를 잇는다는 뜻에서 다리 위를 흙으로 깔아놓았다. 바로 옆 스카이웨이와 2산책로의 접점 부근 ‘하늘마루’에서 조금 쉬었다 가면 힘이 덜 든다.
하늘교에서 5분 정도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인 ‘하늘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 내에 벤치가 잘 마련되어 있고 사방이 확 트여 전망도 볼 만하다. 멀리 수락산, 용마산, 서경대, 불암산, 내부순환로를, 좌측에는 우뚝한 보현봉과 바로 앞 형제봉이 정답게 나란히 서 있는 것까지 볼 수 있다. 마침 이곳에서 토요 근무로 산책로를 안내하고 주변을 관리하는 성북구청 공원녹지과 소속 이운재(60) 씨를 만났다. 희끗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근무하고 있었다. “북악하늘길이 42년 만에 개방되어서인지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어요. 그간 사람들의 때가 묻지 않고 생태가 잘 보존되어 아름드리 나무도 많아요. 산짐승들도 볼 수 있고……. 잠시 이리로 와봐요. 저 쪽 보이죠? 마지막 산봉우리가 있는 쪽으로요. 오전에는 보였는데 지금은 흐릿하게 보이네요.” 그가 가리킨 곳은 인천 대교. 맑은 날엔 인천 쪽까지 볼 수 있다고 했다. 등산객들은 이씨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산책로 안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고, 이씨는 좀처럼 입을 떼지 않을 것 같은 첫인상과는 달리 어느 새 북악산과 관련한 때묻은 역사까지 동원해 청산유수처럼 흥미진진한 달변을 꿰어갔다. 그리고는 북악하늘길 산책로가 잘 안내된 그림지도 책자도 한권씩 나눠주었다. 곁들여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늘전망대에서 ‘바른 걷기 강습’을 실시한다는 것도 귀띔해주었다.
김신조 루트와 호경암 특히 2산책로는 ‘김신조 루트’로 잘 알려져 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하여 무장공비 30여 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한 침투로로 사용했던 것을 딴 이름이다. 하늘 전망대에서 삼분의 일 지점으로 내려오면 ‘호경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1.21사태 당시 국군과 청와대 앞 교전에서 실패하여 퇴각하던 무장공비 사이의 총격전으로 3미터 높이의 바위 곳곳에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호경암 바로 앞에는 지난해 김신조(현재 서울성락교회 목사, 김씨는 당시 인왕산을 넘어 도망치다 홍제동에서 국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씨가 41년 만에 이곳을 방문해 바위에 난 총탄 자국을 만지는 사진과 함께 감회를 밝힌 모 일간지 기사를 현수막 천으로 만들어 부착해 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섬뜩해요. 무장공비들이 어떻게 침투해 들어왔을까. 총탄 자국이 흉흉한 호경암을 잘 보존해 북악산을 찾는 이들의 안보 교육용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 몇 분이 호경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나서 하는 말을 주워담았다. 2산책로는 1,500여 개의 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숲 속 운치에 매료당하고 걷는 즐거움에 힘든 것도 잊게 된다. 산책로 도중 남마루와 계곡 옆에 잘 설치된 계곡마루에서 잠시 쉴 수 있고 계곡 위로 설치된 솔바람교도 일품. 전망명소마다 서울 도심을 관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황사현상으로 맑고 깨끗한 서울 도심과 서울성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조금 더 힘내 걸으면 2산책로 끝점이자 1산책로와의 접점인 명경지수‘성북천발원지’에 도착하게 된다. 1산책로의 중간 지점 격이다. 1산책로를 다 돌자면 위로 북악팔각정까지 가야 하지만 절반은 묻어두고, 숙정문 안내소에서 잠시 쉬면서 산책을 정리하고, 1산책로 시작점인 말바위쉼터 쪽으로 향하지 않고 편한 귀가를 위해 편법을 써서 하산했다. 바로 아래 삼청각을 지나 10분 정도 걸으면 시내버스(녹색 1111, 2112번) 종착점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옆엔 우정의공원이 위치해 있는데, 잘 단장된 잔디밭 공원 내 펄럭이는 각국의 깃발이 산책의 대미를 장식이라도 하듯 반겨줘서 무거운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귀가길 지하철 전동차에 몸을 싣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는데 하늘한마당에서 만났던 성북구청의 안내원 이씨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북악하늘길이 개방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벌써 잘 보존돼온 아름다운 생태가 사람 손을 타고 있어요. 훼손되고 있는 흔적이 보인단 말이요. 저 아래 숲속에 아름드리 나무가 많은데, 그 중에는 엄나무, 두릅나무가 있는걸 어떻게 알고 훼손하고 있어. 약재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말이여. 북악산 면적이 만만찮아 몇 사람 가지고선 관리도 힘들지.” 42년 만에 개방되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북악하늘길이 예전 모습대로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잘 보존되어 나갔으면 한다. 서울 도심에 이 같은 산이 또 어디 있으랴. 하늘이 서울에 내려준 귀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이 산을 시민 모두가 자기 집 뜰이라 생각하고 제대로 관리해 아름다운 북악을 후손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었으면 한다. 주말에 집에서 TV 속에 파묻히거나 잠만 자지 말고 가족과 함께 연인과 손잡고 나서면 어떨까. 또 혼자면 어떠랴. 산천초목이 다 내 친구 아닌가. 지금 당장 북악하늘길로 가보자. 그곳에 분명 당신을 반겨줄 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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