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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생활문화

일하는 게 보약이다

일하는 게 보약이다



시민기자 이혁진




11일 코엑스에서 열린 '2009 어르신 일자리 박람회'를 참관했다. 개장을 알리는 시간은 오전 10시지만 어르신들은 9시부터 입장을 기다렸다. 밀려드는 인파가 인산인해라는 말이 실감 나는 풍경이었다. 개인적으로 취재를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일선 현장에서 노인일자리를 상담하고 있기에 박람회에 대한 기대는 어르신들 못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행렬을 보면서 구직 열기를 새삼 느꼈지만 한편으론 우리 노인들의 다급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도 있었다.

예년과 달리 행사를 주관하는 서울시가 박람회를 당긴 것은 최근의 어려운 경제현실을 반영한 적절한 조치였다. 그만큼 참가하는 어르신들의 각오도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구직연령이 높아졌다. 이력서를 작성하는 노인들 중엔 7, 80대가 많아 보였다. 직종과 구인업체를 연결해주는 구인구직 매칭 코너와 신청서 접수창구는 일하는 즐거움이 뭔지를 느끼게 할 만큼 분주했다. 꼼꼼히 이력서를 써내려가는 분, 채용게시판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분, 여러 군데 바삐 이력서를 제출하는 분, 조금이라도 눈에 들려고 매무시를 고쳐 사진 찍는 어르신 등 박람회 풍경은 굳이 노인이 일해야 하는 당위성을 재론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취재 경쟁도 뜨거웠다. 실시간으로 박람회 현장을 중계하는 인터넷 생방송은 노인들이 말그대로 '구구팔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치구에서 마련한 부스에서 구직안내를 받고 있는 한 어르신(80세)은 박람회의 열띤 분위기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눈치껏 살짝 구직 분야를 여쭸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역사와 문화해설사를 지망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취업을 대비해 소위 '스펙'을 진작에 갖췄지만 경쟁이 치열해 아직도 대기하는 실정이라며 이번 상담에 적잖은 희망을 걸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5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를 상회한 수치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 몇 년간 나타난 10퍼센트 이상의 폭발적인 증가율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노령국가가 된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한 세계적인 노인전문가는 유약한 노인들만의 세계, 대책 없는 노인천국은 인류의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했었다.

이 점에서 서울시의 최근 행보가 주목된다. 이번 박람회를 포함해 아홉 차례의 일자리 행사를 개최하고, 어느 때보다 노인 일자리를 대폭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복지의 핵심은 일자리라 할 수 있다. 고령화 시대를 치닫는 만큼이나 우리 노인들은 자식들에 의존하는 예전의 그런 세대가 아니다. 요즘 실버 세대는 자식들과 함께 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경제적으로 독립하려는 노력은 어찌 보면 너무도 반가운 일이다.

"일하는 것이 보약이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리다. 그러나 우리 시대 노인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노인일자리를 제공하는 박람회와 다양한 취업 인프라를 마련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은 노령화 시대를 맞이한 우리 모두가 공존하는 해법이다.